한국의 망 사용료 문제에 관해서
한국에서 망 사용료 관련으로 이야기가 많다. 망 중립성(Net neutrality)와는 좀 다른 문제다.
망 중립성은 이용료를 냈으면 그것이 불법적이지 않는 한 특정 카테고리로 묶이는 통신에 대해 우선권이나 반대로 제한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보이스톡 요금제나 테더링 제한 같은 것이 망 중립성 위반의 대표적인 예시다.
망 사용료 문제는 낼 필요도 없는 사용료를 부당하게 받아내는 또다른 문제다.
인터넷의 기본 전제
한국의 소비자들은 통신사 3사 중에서 원하는 회사를 골라서 인터넷 회선을 계약하게 된다. KT, SK, LG 중에서 아무 거나 원하는 회사를 골라 사용하면 된다.
통신사들은 국내의 다른 통신사는 물론이고 전세계 인터넷 망과 피어(상호접속)를 맺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KT를 사용해도 LG 회선을 사용하는 사람과 같이 게임을 할 수 있고 미국에 있는 웹사이트에도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각 통신사 간에는 어떤 계약을 맺는가? - 사용량에 따라서 알아서 계약을 한다. 서로 사용량이 비슷하다 싶으면 서로 돈을 안 내도록 계약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회사의 설비에 달라붙는 형태라면 정액제나 혹은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받는다. 당연히 이 비용은 회사가 따질 일이고, 소비자는 알아야 할 이유조차 없다.
그저 소비자들에게서 걷은 요금을 가지고 설비 투자를 하든 타 회선에 이용료를 내든 회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참고로 한국은 해외(전세계) 인터넷 망에 대한 투자를 적게 했기 때문에 해외와 통신을 하게 되면 한국이 타국의 설비에 빌붙는 형태이기 때문에 해외에 돈을 내게 되어 있다. 설비 투자를 좀 더 했다면 돈을 안 내거나 오히려 받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한국 통신사들의 논리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해외에 서버를 두었지만 한국에도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 컨텐츠들이 한국에 전송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인터넷 망을 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유튜브든 넷플릭스든 한국 통신사들에게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
라며 인터넷의 기본 대전제를 알고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망언을 하고 있다.
반대로 생각해서 한국에서 미국의 유튜브에 접속할 때 미국 통신망을 사용하는 것도 맞는 말인데 미국 통신사인 AT&T, Verizon의 망을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맞고, 앞서 설명했듯이 한국이 미국의 망을 이용하는 셈이기 때문에 요금도 내고 있다)
동남아에서 인기를 끄는 메신저 카카오톡은 인도네시아 통신사들에게 사용료를 내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자신들이 계약한 한국의 통신사에게만 사용료를 내면 된다. 동남아를 포함한 전세계 인터넷에 연결하는 비용을 이미 한국 통신사에 냈으니까.
반대로 말해서 미국의 기업은 미국의 통신사에 비용을 이미 다 냈고, 한국 통신사에 사용료를 지불할 의무가 전혀 없다. 괜히 미국으로 가는 트래픽이 늘어나면 본인들의 손해가 크니까(자기들이 설비 투자를 했으면 비용이 0이 되었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꿎은 해외 기업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상호접속고시
원래 한국의 3사는 서로 접속비용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KT 사용자가 다른 KT 사용자와 통신을 하든 SK 사용자와 통신을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달라졌다.
2016년부터는 데이터를 많이 보내는 쪽이 데이터를 보낸 양만큼 상대편 통신사에 요금을 내야 하도록 정책이 달라졌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다.
SK 사용자가 KT에 있는 서버에서 게임 등을 다운로드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SK→KT로 보내지는 데이터는 얼마 되지 않고 반대로 KT→SK로 가는 데이터는 게임 용량만큼 큰 양이 전달된다.
요청한 건 SK쪽인데 위의 정책 때문에 KT가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기타 해외 서비스들이 캐시 서버를 한국에 두고 싶어 하면 KT에 두었다.
SK, LG에서 페이스북의 캐시 서버에 접속하면 KT→SK/LG 전송량이 증가하게 되고, 오히려 돈을 받아야 할 KT는 돈을 더 내야 하는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상식적인 경우라면 이상한 정책을 바꾼다. 하지만 한국에선 “너 때문에 내가 돈을 더 내게 되었으니 니가 책임져”라며 페이스북에게 돈을 요구한다.
돈 받고 만든 찌라시 인터넷 뉴스
썩은 언론들은 대기업에게 돈을 받고 거짓 뉴스를 만들어 낸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카카오, 네이버 등은 한국의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인터넷 사용료를 납부한다
그러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은 똑같이 한국에 서비스를 하면서 한국의 통신사에 요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틴다
그렇다고 요금을 안 낸다는 이유로 통신사에서 접속을 끊어버리면 소비자의 불만이 크기 때문에 함부로 끊지도 못한다
그렇게 통신사들은 돈도 안 내는 해외의 서비스 업체들 때문에 이익도 없고 손해만 보고 있다
위에 있는 내용들을 제대로 읽었다면 “뭔 헛소리야”가 자동으로 나올 망언이다. 하지만 잘 모르고 저 기사 내용만 보면 맞는 말로 보이기 때문에 선동을 당하기 딱 좋다. 원래 선동용 거짓 찌라시가 다 그렇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해외 업체들은 한국 통신사에게 돈을 내야 할 이유조차 없고 오히려 해외 망을 빌려 쓰고 있기 때문에 한국 통신사들이 해외에 요금을 내야 하고 그 비용은 이미 소비자에게서 통신요금에 포함해서 받았다.
기타 다른 이야기들
한국이 해외 망을 빌려 쓰고 있기 때문에 유튜브 등의 사용량이 많아지면 통신사가 해외에 지출해야 할 비용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요금 부담을 늘리면 사용자가 다 빠져나가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해외 업체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깡패노릇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는 행동이 되는 건 아니다.
이 사태를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한국에 세금을 안 내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 문제라는 것을 제외하고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한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서 수익이 있으면 소득세 등을 내는 것이 맞지만, 관련도 없는 비용을 강제로 청구당하고 협박 당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유튜브, 트위치, 넷플릭스 같은 업체들이 한국에서 미운 털이 박힌 건 또 사실이라서 별로 지지를 못 받는 게 어느 정도는 있긴 하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고 별개의 문제다. 까려면 맞는 걸로 까야 한다.
통신사가 해외 업체에게 말도 안 되는 요금을 청구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접속 제한을 하겠다(망 중립성을 어기겠다) 했을 때의 희망편은 업체가 그냥 무시하는 것이다.
접속 제한이 걸리면 (부당한 것과 별개로) 해외 업체 입장에서 당장의 고객들은 불만을 가지고 빠져나갈 지 모르겠지만, 다른 통신사에서는 원활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통신사에게 욕을 하며 다른 통신사로 갈아타는 것이 자연적인 일이다. 통신사가 스스로 못 해먹겠다고 포기했는데 소비자가 그런 통신사를 쓸 이유가 있을까?
좀 다른 이야기지만 클라우드플레어는 한국의 최고급 고객이 아닌 이상 서울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정책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만 클라우드플레어를 사용하는 웹사이트에 대한 접속이 느리고, 한국에서 접속할 때는 한국이 아니라 해외의 서버에 접속을 하게 되는만큼 한국의 통신사에서 해외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만 더 늘어났다. 클라우드플레어에게 큰 돈을 받아먹으려다 결국 먹지도 못하고 반대쪽에서 더 크게 뱉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DPI를 통한 패킷 조작, 테더링 제한 등의 망 중립성 위반 등 한국의 통신사에게는 하고 싶은 욕이 한 무더기로 있지만, 이쯤 해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