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블 타임을 거의 10년 넘게 써 왔는데 드디어 이번에 페블 타임 2가 배송이 되었다. 페블 타임 2 공개가 2016년이었으니 10년만에 손목으로 온 셈이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페블이 타임 2를 내놓는다고 했다가 Fitbit에 인수되면서 사업을 철수했고, Fitbit은 다시 구글에 인수되면서 그냥 역사상으로 사라진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서 10년이나 지났지만 페블을 대체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는 단 하나도 나온 적이 없었다. 페블을 쓰는 사람들은 주로

  • 7일 이상 가는 배터리
  • 항상 켜져 있는 화면
  • 다양한 서드파티 앱과 시계 화면

이 세 가지 정도를 이유로 삼는데 이 세 가지를 만족하는 스마트워치는 단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이 없다고 말해도 틀렸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은 Rebble이라고 페블의 부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앱이나 시계 펌웨어 업데이트를 계속 지원해 줬지만 그래도 하드웨어적인 문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배터리타임이 은근히 줄어들고 (물론 알리에서 호환 배터리를 사다가 쉽게 교체할 수 있기는 하다), 충전용 단자는 닳아 없어져서 충전 한 번 하려면 충전기를 이리저리 비벼서 충전 화면이 뜰 때까지 씨름을 해야 하고 등
그 와중에 작년인가 구글에 있던 페블 애호가들이 페블을 오픈소스로 공개했고 페블의 창시자가 다시 나타나서 페블을 부활시킨다고 해서 예약 주문을 했고 드디어 배송이 되었다. 이게 지난 10년 간의 스토리다

아무튼 페블 타임 1과 비교해서 뭐가 달라졌냐면

  1. 배터리 타임 증가
    기존엔 7일 정도 되는 배터리타임이었고 광고문구에서는 “출장이 3일? 충전기 안 챙겨도 돼!”라고 했는데 이젠 14일 내지는 18일 정도 된다고 한다. 화면도 커지고 심박센서도 추가되었는데 10년간의 하드웨어 기술 발전 덕분에 배터리 타임이 늘었다고 한다.
    문제는 레딧을 쭉 둘러보니 초기 불량이 좀 있는 듯 하다. 배터리가 하루밖에 안 가서(애플워치 쓰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절한다) 교환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배터리가 정상인지 쉽게 판별할 방법은 없는데 보증기간은 30일이라 너무 짧다는 말도 나오고 아무튼 불량이 있다면 배터리 불량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2. 화면
    일단 화면이 커졌다. 그래서 기존 워치페이스나 앱을 쓸 때 옵션이 3가지가 제공된다. 중앙배치, nearest, bilinear. 중앙배치는 스케일링 없이 기존 화면 사이즈와 동일하게 가운데에 띄우는 방식이고, nearest는 가장 가까운 픽셀의 값을 사용해서 선명하긴 하지만 울퉁불퉁한 단점이 있고, bilinear는 그냥 흔한 선형보간이다. 울퉁불퉁하지는 않지만 살짝 흐려진다.
    그리고 RGB 백라이트가 들어갔다만 굳이? 싶은 느낌이고 기본적으로 색이 고르지가 않아서 백라이트가 시퍼렇게 뜬다. 레딧에서 보니까 #ff7f38을 써야 흰색에 가깝다는 팁이 있었다. 굳이 이 RGB 백라이트를 활용한다면 카시오 같은 브랜드 느낌의 워치페이스를 쓰면서 백라이트를 퍼런색이나 초록색 같은 걸 쓰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이 들어갔다. 그래봐야 주 조작은 4개의 버튼이긴 하지만 기본설정으로 터치를 두 번 따닥 하면 백라이트가 켜지는 기능이 있다. 그 외에 터치를 실험해보고 싶다면 Yes-No 앱이나 계산기 앱 같은 걸 써보면 된다.

  3. 심박센서
    내가 페블을 쓰던 이유 중 하나는 심박센서가 없다는 거였다. 근데 이 버전엔 들어갔다.
    심박센서를 싫어하는 이유는 당연히 배터리 소모가 첫번째고, 시계를 벗어두면 초록색 빛이 계속 깜빡이는 게 너무 꼴보기 싫어서였다. 건강이 안 좋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쓸모가 없기도 하고.
    근데 이번 버전에선 결국 심박센서가 들어갔는데 다른 스마트워치처럼 항시 동작하는 건 아니고 기본적으로는 10분마다 한 번씩만 측정한다. 운동 중에는 상시측정으로 갈 수 있기도 한데 이 정도면 나에게도 타협 가능한 정도라고 본다. 10분 간격이면 충분하기도 하고 시계를 벗었을 때 초록색 빛이 계속 나오지도 않고.

  4. 스피커
    심박센서에 이어서 스피커도 들어갔다. 솔직히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걸로 전화 하는 것도 아니고..
    아까 말한 Yes-No 앱 같은 걸로 테스트를 할 수 있는데 통화해도 무리는 없을 수준의 스피커였다.
    근데 볼륨 조절 그런 건 전혀 없다. 시계를 벗어서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을 때 쓸모가 있으려나?

  5. 충전기
    기존엔 기다란 충전 케이블이었고 한쪽 끝이 USB-A였는데 이번엔 USB-C를 꽂을 수 있는 충전단자부분만 제공한다. 그래서 케이블은 다른 기기 충전하는 케이블을 아무 거나 끼우면 되고 충전 단자 부분만 가지고 다니면 되도록 스트랩이 달려 있다. 충전 단자 자체는 기존 페블 타임과 완벽하게 호환이 되는 방식이라 난 기존에 3D 프린터로 뽑아 둔 거치대를 그냥 쓰기로 했다. 하지만 페블 충전의 진짜 문제는 케이블 단선이 아니라 시계쪽 충전 단자의 포고핀 닿는 부분이 닳아서 접촉불량이 생기는거다. 아직은 모르겠고 이건 계속 써봐야 알 것 같다.

대충 이 정도가 달라졌고 그 외에 짤막하게 언급할만한 건

화면이 볼록하지 않고 평평해졌다. 근데 유리부분이 돌출되어 있어서 불안한데 엣지 범퍼를 3D 프린터로 출력해서 끼워줬더니 안정적이기도 하고 색도 포인트가 생겨서 이뻐졌다. 레딧에 올렸더니 3D 프린터 뭘 쓴거냐, 자기 주변 업체에 문의해 봤더니 너무 가늘어서 못 뽑아주겠다고 한다 뭐 이런 댓글들이 달리더라. 정작 나는 1세대 프린터 제일 구린 걸로 뽑았다.

시곗줄 폭 자체는 22mm로 동일한데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애플워치 기본 시곗줄처럼 짧은쪽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긴 줄을 그 안으로 밀어넣어 숨기는 방식이다. 샤워 직후에 뽀드득한 상태로 끼려고 하면 잘 안 들어가긴 하더라.

공식으로 지원하는 언어팩이 다양해졌는데 한국어는 없다. 기존 한국어 팩을 설치해도 잘 동작하긴 하지만 오랜만에 깃허브 찾아보면서 새로운 언어팩 빌드 프레임워크에서 빌드해서 넣어줬다.

그리고 신나서 레딧을 좀 둘러보기도 하고 앱스토어도 둘러보면서 앱과 워치페이스를 추천하자면

  1. ForecasWatch 2
    원래 쓰던 워치앱인데 1버전이랑은 다른 사람이 만든 버전이다. 달력도 뜨고 날씨도 뜨고 온도도 뜨고 강수량도 뜨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까지 떠서 주변에서 “시계에 그런 것도 떠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 워치페이스다. 근데 잘 생각해보면 다 시계에서 뜰만한 정보들이다

  2. Skyarc
    ForecasWatch 2랑 비슷한 개념인데 얘는 동그랗게 원형으로 뜬다.
    단점이라면 날씨가 원형으로 24시간에 맞게 뜨는데 일반적으로 시계는 12시간이다보니 원의 어디가 몇 시인지 좀 헷갈린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24시간이 아니라 오늘 날씨만 보여줘서 자정쯤 되면 내일 날씨는 안 보이고 오늘의 이미 다 지난 날씨만 볼 수 있다. 그래도 이쁘긴 하다

  3. Find my Phone
    이름 그대로 폰 찾는 앱이다. 시계에서 버튼을 누르면 폰에서 윙윙 소리가 난다

  4. HASC Home Assistant Shortcut
    홈어시스턴트 연동 앱이다. 다른 앱들은 홈어시에 있는 모든 엔티티를 다 보여준다거나 스크립트만 실행이 된다거나 하는데 홈어시에 연결된 직비 기기만 50개가 넘어가는 나로서는 이 앱처럼 미리 설정한 장치들만 보여주고 제어가 되는 게 필요했다. 이게 딱이다

  5. Muninn
    배터리 모니터링 앱이다. Battery leak이나 Battery+ 같은 앱도 있었는데 걔는 백그라운드 서비스로 등록을 해줘야 하고 얘는 그냥 6시간마다 깨어나는 방식이라 백그라운드 서비스로 등록을 안 해줘도 된다
    근데 이제 이런 거 없어도 폰에서 앱을 켜면 훨씬 더 상세하게 보여주긴 한다

  6. Touchy Weather
    그냥 날씨 앱인데 터치스크린을 지원해서 스와이프로 넘길 수 있다. UI도 깔끔한 편이다

  7. Hubble
    페블은 원래 컨셉이 타임라인이었다. 위로 가면 과거를 보여주고 아래로 가면 미래를 보여주고 현재는 워치페이스라는 컨셉. 과거 기능은 숨어버리고 헬스케어 관련 기능으로 바뀌긴 했지만 미래 타임라인은 여전한데 캘린더에 이벤트를 많이 등록하는 게 아닌 이상 여기엔 해 뜨는 시각, 해 지는 시각만 남는다.
    그 빈 자리를 채워주는 앱인데 나는 달이 뜨는 시각, 달의 모양 등이 뜨게 해뒀다. 원래 폰에서도 달의 위상이나 해 지는 시각 등을 볼 수 있는 앱을 쓰던 사람으로서 시계에 이런 게 뜨면 편하다. 옛날 사람들은 달 가지고 시각과 날짜를 파악했다는데 그런 감성이다